나름 핸드드립 커피를 꽤 오래 마셔왔다고 생각했는데, 우연히 들렀던 제주도 카페에서 처음 마신 융드립 한 모금이 제 자신감을 가볍게 무너뜨렸습니다. 묵직하고 기름진데 텁텁하지 않은 커피의 질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서, 집에 돌아오자마자 융 필터를 주문했고 지금까지도 종종 내려 마시고 있습니다. 융드립이 궁금한데 동시에 익숙하지 않아서 낯선 분이라면, 저도 그랬으니 같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.

첫 경험, 제주 카페 홉히에서 멈칫했던 순간
제주도 여행 마지막 날이었습니다. 용두암 바닷가 앞에 있는 카페 홉히에 들어갔는데, 직원들이 흰 천 같은 것에 커피를 따르고 있었습니다. 분명히 드립커피의 한 종류같은데 처음보는 장비였습니다. 직원에게 뭐냐고 물었더니 융드립으로 내리는 커피라고 했습니다.
갓나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멈칫했습니다. 제가 평소에 마시던 하리오 V60 드립과는 질감 자체가 달랐습니다. 여기서 하리오 V60이란 일본 브랜드 하리오에서 만든 원추형 드리퍼로, 현재 핸드드립 시장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. 그 방식으로 내린 커피는 산뜻하고 가볍고 깔끔한 편인데, 홉히의 커피는 달랐습니다. 훨씬 묵직하고, 혀에 오래 머무는 단맛이 있었고, 단밤이나 캐러멜, 흑당처럼 달고 진한 향미가 층층이 느껴졌습니다.
그 차이의 핵심은 추출 방식에 있었습니다. 융드립은 천 소재 필터를 사용하는데, 이 방식이 종이 필터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. 천 필터는 커피 오일, 즉 지방 성분을 거의 그대로 통과시킵니다. 이 커피 오일이란 원두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지질 성분으로, 커피 본연의 바디감과 향미를 담고 있는 핵심 요소입니다. 종이 필터는 이 오일을 상당 부분 흡수해버리기 때문에, 같은 원두라도 추출 방식에 따라 맛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.
그날 저는 홉히에서 시그니처로 팔고있는 디카페인 디블렌드 원두를 한 봉지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. 그리고 그날 밤 바로 융 필터를 주문했습니다.
추출 방법, 세 번 실패하고 언저리에 닿다
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. 핸드드립 자체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, 융드립은 첫 번째부터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. 물 온도가 높았는지 쓴맛이 압도했고, 두 번째는 너무 천천히 부어서 과추출이 일어났습니다. 과추출이란 커피 분말에 물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접촉해 쓰고 떫은 성분까지 녹아나오는 현상을 말합니다. 세 번째에야 겨우 홉히에서 마셨던 그 맛의 언저리에 닿은 것 같았습니다.
융드립에서 중요한 변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.
- 물 온도: 85~90도 사이가 적합합니다. 95도 이상이면 쓴맛이 강하게 올라옵니다.
- 추출 속도: 천 필터는 종이보다 물이 느리게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. 물을 붓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.
- 뜸 들이기: 분쇄된 원두에 소량의 물을 먼저 부어 30초 정도 기다리는 과정입니다. 이 단계에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와 이후 추출이 균일하게 이루어집니다.
- 분쇄도: 융드립은 중간 굵기 정도의 그라인딩이 적합합니다. 너무 곱게 갈면 필터가 막혀 흐름이 일정하지 않아집니다.
그라인딩이란 원두를 분쇄하는 과정으로, 입자의 굵기에 따라 추출 속도와 맛의 농도가 크게 달라집니다. 이 부분이 융드립에서 의외로 예민하게 작용합니다.
손 끝에 닿는 융의 감촉, 커피 오일이 그대로 통과하는 그 느낌이 이상하게 좋았습니다. 단순히 커피를 만드는 게 아니라, 뭔가를 직접 다루고 있다는 감각이랄까요. 제 경험상 이 과정 자체가 융드립을 계속 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.
커피 업계에서는 추출 방식에 따라 커피의 TDS(총용존고형분) 수치가 달라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. TDS란 커피 액체에 녹아 있는 고형 성분의 총량을 나타내는 수치로, 이 값이 높을수록 진하고 바디감 있는 커피가 됩니다. 융드립은 오일 성분이 그대로 통과하기 때문에 종이 필터 드립보다 TDS가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(출처: Specialty Coffee Association).
필터 관리, 번거롭지만 이게 전부다
융드립이 한국에서 대중화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 부분 때문일 겁니다. 제가 직접 써봤는데, 관리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습니다.
사용 후에는 커피 찌꺼기를 털어내고 흐르는 물에 꼼꼼히 세척한 다음, 물에 담가 냉장 보관해야 합니다. 보관 중 물은 이틀에 한 번 정도 갈아줘야 하고, 주기적으로 끓는 물에 5~10분 삶아서 필터에 밴 기름기와 잡냄새를 제거해야 합니다. 한 번은 세척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로 다음 날 사용했는데, 미세하게 산패된 듯한 냄새가 커피에 섞여서 그냥 버렸습니다. 그 이후로는 관리에 더 신경 쓰고 있는데 솔직히 부지런한 사람만이 꾸준히 마실 수 있는 방법같긴 합니다.
필터의 수명은 사용 빈도와 관리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, 통상적으로 50~100회 사용이 기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. 환경적으로는 융필터를 사용하는게 더 이로운 방법 같습니다. 참고로, 필터 안쪽 융의 표면이 변색되거나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다면 교체 시점으로 봐야 합니다.
관리가 번거롭다는 의견도 있지만, 저는 오히려 이 과정이 커피를 내리는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. 자동화된 편리한 방식과는 다르게, 융드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이 가는 방식입니다. 그 번거로움이 오히려 매일 아침 루틴을 의례처럼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습니다.
커피 소비 트렌드 연구에 따르면 최근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, 홈카페 문화 확산과 함께 수동 추출 방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(출처: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). 그럼에도 융드립은 아직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정보 자체가 드문 편입니다. 하리오나 칼리타 관련 영상은 수백 개인데, 융드립은 찾기가 어렵습니다. 관리 문제만으로 이렇게 사라진 건 아쉬운 일입니다.
융드립의 세계로 입문할수있는 기회가 되었던 제주도의 홉히 카페가 고맙기도 하고, 솔직히 약간 원망스럽기도 합니다. 융드립은 분명 매일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방식이지만, 여유 있는 주말 아침에 좋은 원두 한 봉지를 꺼내두기에는 더 없이 좋은 추출법입니다. 처음 시도한다면 물 온도와 추출 속도 두 가지만 먼저 잡아보시길 권합니다. 세 번 정도 실패하면 그때부터 맛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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