핸드드립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이 바로 비율이었습니다. 제 주변에 매일 드립커피를 3잔씩 내려 마시는 친구가 있어서 물어봤더니 브루 레시오 1:16을 추천해주더군요. 그런데 원두를 사러 간 카페에서는 사장님이 1:15를 권하셔서 한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. 어느 쪽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지만, 직접 여러 비율로 추출해보니 비율이란 게 단순히 진하기만 조절하는 숫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. 브루 레시오(Brew Ratio)는 원두와 물의 추출 비율을 의미하는데, 이 비율에 따라 커피의 향, 단맛, 바디감, 심지어 끝맛까지 완전히 달라집니다.

1:15 비율로 추출했을 때 느낀 점
처음 1:15 비율로 커피를 내렸을 때는 확실히 존재감이 있었습니다. 원두 20g에 물 300g을 부으니 한 모금 마셨을 때 밀도가 느껴지더군요. 카페에서 마시던 아메리카노처럼 묵직한 느낌이 들어서 "이게 제대로 된 커피구나" 싶었습니다.
하지만 같은 비율로 계속 추출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. 어떤 날은 맛있었는데, 어떤 날은 똑같은 레시피인데도 텁텁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. 특히 중배전이나 다크 로스팅 원두를 1:15로 가져가면 쓴맛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마시고 나서 입안이 피곤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.
여기서 TDS(Total Dissolved Solids)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, 이는 물에 녹아든 커피 성분의 농도를 의미합니다(출처: 한국커피협회). 쉽게 말해 물이 적을수록 같은 양의 커피 성분이 더 압축되어 느껴지기 때문에, 1:15처럼 타이트한 비율에서는 추출 과정에서 생긴 작은 실수도 맛에 크게 반영되는 겁니다.
제가 직접 써본 결과, 1:15 비율은 이런 상황에서 잘 맞았습니다.
- 블렌드 원두처럼 밸런스가 이미 잡혀 있는 경우
- 미디엄에서 다크 로스팅 사이의 중강배전 원두
- 바디감과 단맛을 강조하고 싶을 때
반대로 산미가 있는 라이트 로스팅 원두를 1:15로 추출하면 산미가 너무 강하게 올라오면서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.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, 진하면 무조건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완전히 깨진 순간이었습니다.
1:17 비율로 바꿔본 후 달라진 점
1:17은 처음엔 불안했습니다. "이렇게 물을 많이 넣으면 맛이 다 빠지는 거 아냐?" 싶었거든요. 그런데 케냐 AA 키암부 원두를 1:16으로 추출했을 때와 1:17로 추출했을 때를 비교해보니 완전히 다른 커피가 나왔습니다.
1:16으로 내렸을 때는 갓 볶은 원두에서 나오는 과일 산미와 초콜릿의 진한 단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졌습니다. 그런데 1:17로 바꾸니 바디감이 옅어지면서 살짝 밍밍하게 느껴졌습니다.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. 오히려 향이 더 선명하게 열리면서 과일 노트가 또렷하게 드러났고, 한 잔 다 마셔도 입안이 덜 피곤했습니다.
추출 수율(Extraction Yield)이란 원두에서 물로 옮겨간 성분의 비율을 의미하는데, 일반적으로 18~22%가 이상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(출처: 스페셜티커피협회). 1:17 비율은 물이 넉넉하기 때문에 성분이 덜 압축되면서 각 맛의 층이 분리되어 느껴질 수 있습니다.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. 단순히 "연하다"가 아니라 "정리되어 있다"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.
원두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브루 레시오 레시피
여러번의 시도끝에 알아낸 사실은 싱글 오리진 원두처럼 향미 특성이 뚜렷한 커피는 브루 레시오 1:16에서 1:17 사이가 훨씬 장점을 잘 살려주더군요. 라이트 로스팅의 약배전 원두도 마찬가지였습니다. 1:15로 가져가면 산미가 지나치게 날카로워지는데, 1:17로 완화하니 산미와 단맛이 균형을 이루면서 훨씬 편하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.
물론 브루 레시오 1:17도 만능은 아닙니다. 분쇄도가 너무 굵거나 추출 시간이 짧으면 정말로 심심한 커피가 나올 수 있습니다. 하지만 기본 추출만 제대로 된다면, 1:17은 커피를 맑고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비율이었습니다.
저는 이제 원두 특성에 따라 비율을 조정합니다. 싱글 오리진이나 라이트 로스팅은 1:16~1:17, 블렌드나 미디엄~다크로스팅은 1:15~1:16으로 가져갑니다. 프렌치 프레스 같은 침출식 추출도 이 원칙을 똑같이 적용하면 됩니다. 하지만 절대적 기준은 아니니, 본인 취향에 맞게 나만의 레시피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집커피의 재미라고 생각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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